세계 자본시장에서 ‘투자 한파’가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 경제권이 모두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에서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투자환경의 급변은 단순 경기침체가 아니라 무역전쟁, 정책 불확실성, 지정학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강화 기조가 촉발한 관세장벽이 장기적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투자 이동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도, 중국도 투자유치 부진

올해 1분기 미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약 528억 달러 수준으로, 직전 분기 대비 34% 급감했다. 이는 2년 만의 최저치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출범하며 본격화한 강력한 관세정책과 공급망 탈중국 전략은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을 독려하면서도 단기 투자결정에는 불확실성을 심화시켰다. 기업들이 설비 투자나 사업 계획을 ‘관망’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미국 정부는 이 감소세가 일시적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향후 4년간 미국 내 28조원대 신규 투자를 약속하는 등, 중장기적 현지화 전략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관세와 규제 리스크가 기업 의사결정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1~5월 누적 외국인 투자 유입액은 약 3582억 위안(68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넘게 추가 감소했다. 이미 2023년 한 해 동안 외국인 투자액이 전년 대비 27% 급감했는데, 그 추세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재투자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를 내걸며 외자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경기둔화, 외국 기업 차별 논란, 미·중 패권경쟁 심화가 외국계 기업들의 투자 결정을 꺼리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도 ‘역대급’ 기록에서 급제동

한국은 지난해까지 외국인 직접투자에서 역대 최고액을 4년 연속 경신했지만, 올해 상반기 들어 그 열기가 식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국인 투자 신고액은 131억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약 15% 감소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의 위축기였던 2021년 상반기 수준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이는 단순히 글로벌 경기 둔화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 대선정국, 지정학적 긴장, 무역블록화, 공급망 재편 등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투자 흐름을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올해 외국인 투자 현금보조금 지원 한도를 대폭 상향하고, 총 2000억 원 규모 예산을 확보했다. 하지만 상반기 집행률은 35%에 그쳤다. 기업들의 투자 결정 자체가 늦어지고, 프로젝트 심사와 집행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 위축, 구조적 리스크 되나

세계무역기구(WTO)와 UN 무역개발회의(UNCTAD) 등 국제기구들은 올해 글로벌 외국인 직접투자가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무역·투자 정책의 예측불가능성

지정학적 분열과 긴장 고조

보호무역주의 강화

공급망 재편에 따른 투자지연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투자계획이 보수적으로 수정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UNCTAD는 2024년 전 세계 FDI가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며 올해 전망도 어둡다고 지적했다. UN 사무총장은 “세계화의 퇴조와 장벽 강화가 글로벌 투자 흐름을 막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 시각: “한국, 경쟁적 투자유치 전략 필요”

한국의 외국인 투자 전략도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는 대기업 중심 대규모 프로젝트 유치가 핵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첨단기술, 배터리, 반도체, 친환경 인프라 등 특정 산업군의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

현금보조금 확대만으로는 한계

규제 예측가능성, 정책 안정성, 인력·입지 경쟁력 확보

글로벌 기업 본사 차원의 투자결정 구조 이해 필요

특히 미국 IRA, EU의 전략산업 보조금 정책 등은 글로벌 기업이 생산시설과 R&D를 어디에 둘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도 단발성 현금지원에서 벗어나 산업생태계 구축, 규제개혁, 공급망 연계전략까지 패키지형 접근이 필요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