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의 한 노인요양병원. 재활 치료실 한편에서 한 어르신이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인지 기능이 떨어져 집을 떠나 병원에서 지내게 된 그는, 수십억 원의 자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필요한 복약비조차 가족이 대납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치매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이 문제, 이름하여 ‘치매 머니(Dementia Money)’. 2023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 보유 자산은 약 154조 원, 이는 GDP의 6.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이 숫자가 2050년이면 488조 원까지 늘어나 GDP의 15.6%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자산은 누구의 손에,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 자산은 있지만, 쓸 수 없는 사람들

문제의 핵심은 간단하다. 고령자가 치매로 판단 능력을 상실하면 법적 행위 능력도 제한되며, 가족조차도 자산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계좌 인출은 불가능하고, 보험 해약이나 부동산 처분도 법적 대리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은 사전에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갑자기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으셨는데, 정작 병원비를 마련하려니 본인 명의 통장에서 돈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 송파구, 50대 직장인 A씨

고령자의 자산이 이렇게 묶이게 되면 소비는 줄고, 경제 내 자금 흐름도 정체된다. 고령화가 경제에 ‘고정 비용’을 남기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러한 상황이 사기, 횡령, 무단 인출 등 금융 범죄에 취약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 일본은 어떻게 대응했나?

초고령사회에 가장 먼저 진입한 일본은 이미 ‘치매 머니’가 자산의 흐름을 막고 있다는 위기 인식 속에 여러 제도를 도입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성년후견제도와 가족신탁이다.

성년후견: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치매 환자의 재산과 생활을 관리

가족신탁: 고령자가 건강할 때 자산을 특정 가족에게 위탁해 필요 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

특히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치매 진단 시 자동으로 금융 거래를 정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일부 은행은 AI 기반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도 도입했다.
예컨대 AI는 환자의 평소 입출금 패턴을 분석해 고액 인출, 해외 송금, 중복 결제 등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경고하거나 거래를 차단한다.

🇰🇷 한국의 현실은?

우리나라에도 성년후견제도가 있지만, 복잡한 절차와 낮은 인식률, 가족 간 신뢰 부족, 수탁자의 역량 부족 등으로 활용도는 낮은 편이다.

특히 예방 중심의 자산 관리 시스템은 거의 전무하다. 대부분의 고령자는 치매 진단이 내려진 이후에야 문제를 인식하고, 그땐 이미 자산 접근이 불가능해진 상태다.

✅ 우리가 준비해야 할 세 가지 대안

① 후견제도와 가족신탁의 통합 설계
고령자가 건강할 때 자발적으로 가족신탁을 설계하고, 필요시 법원이 자동으로 후견 체계와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자산은 보호되면서도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다.

② AI 기반 자산 보호 서비스 도입 확대
은행, 증권사, 보험사가 AI 기반의 이상 거래 감지 서비스를 도입하면, 치매 초기 증상부터 위험 징후를 포착하고 자산 도난이나 오용을 막을 수 있다. 단, 이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보호와 오탐률 제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③ 세제 혜택 기반의 신탁문화 장려
예컨대 가족신탁에 가입한 고령자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은 실질적인 가입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더불어 공공기관이 기본 설계 도우미 역할을 하며 중개인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도 병행돼야 한다.

💬 결론: 치매는 ‘의료’의 문제가 아닌, ‘자산 관리’의 문제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지금, 치매는 더 이상 병원 안에서만 다뤄야 할 주제가 아니다. 자산을 잃고서야 후회하는 구조가 아닌, 건강할 때 미래를 설계하고, 자산을 지킬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절실하다.

‘치매 머니 154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예고된 위기의 신호탄이다.

[출처 : 뉴스 조선,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