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2025년 4월 4일 저녁.


대한의사협회(의협) 긴급 상임이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장의 기류는 무겁고도 단호했다. 1년 2개월째 이어지던 정부와 의료계의 단절이 마침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이, 예상치 못한 돌파구를 만들었다.

◆ “이제 대화할 상대가 생겼다”…의협의 태도 전환

오랜 기간 “정부가 먼저 바뀌어야 대화할 수 있다”며 대화를 거부하던 의협.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은 의료계의 전략을 바꿔놓았다.
의협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공식 회동을 조율 중이며, 자체 정책 대안까지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그간 의협은 여야가 추진했던 의정협의체 참여도 거부하며 대립 노선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의협 고위 관계자는 “그간 대화가 어려웠던 주된 이유는 책임 있는 파트너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제야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 전공의들도 선회…‘7대 요구안’ 수위 낮춘다

한동안 의료계 강경투쟁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전공의 단체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의협과 입장을 일치시켜 정부와 공동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의대 증원 철회 등 7대 복귀 조건으로 알려졌던 요구안도 수정에 들어갈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줄곧 고수돼온 7대 요구안에는

· 의대 증원 백지화

· 수련환경 개선

· 불가항력 의료사고 법적 책임 완화 등 현실적으로 조율이 필요한 쟁점이 담겨 있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요구안 중 상당수는 이미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상징적으로 강경 투쟁의 명분이었기 때문에 내려놓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 ‘2020년 9·4 합의’ 재현될까…남은 변수는 강경파

이번 상황은 2020년 정부와 의료계가 전격 합의했던 ‘9·4 의정 합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단일 대오가 아닌 의협 내부 강경파의 반발 가능성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에 따르면, 의협은 오는 13일 전국의사대표자회의, 20일에는 대규모 집회까지 예고하며 여전히 투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투쟁의 방향이 ‘거부’에서 ‘조건부 협상’으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 의료계, 이제는 '대화 주도권' 쥐어야

전문가들은 의협이 이제는 방어적 입장에서 벗어나 정책 어젠다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의료정책 분석기관의 한 연구원은 “대통령은 바뀌어도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실무진은 그대로다. 의협이 실무 접점을 확보하면 의정갈등을 제도화된 협상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의협 내부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합리성과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라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치 변화가 아닌, 의료계 내 전략 재설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 향후 일정 요약

날짜주요 일정

4월 13일전국의사대표자회의

4월 20일집회 예정

미정한덕수 권한대행과 공식 대화

[정리]

윤 전 대통령의 퇴장이 의료계에도 정치적 지형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1년 넘게 침묵하던 의정 대화가 재개되려는 지금, 관건은 의협이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이다. 단지 응급 조치가 아닌, 지속가능한 의정 협력 구조를 만드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그 대화의 첫 문장이 곧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