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번화가부터 경기도 성남의 먹자골목까지, 외식업계가 이례적인 가격 전략에 나섰다. 고물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점 내 소주와 맥주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일부 식당에선 아예 ‘무제한 주류 제공’까지 시행되고 있다. 주류업계 출고가 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왜 식당들은 술값을 낮추는 걸까?


외식 물가 오르는데…술값은 8개월째 하락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음식점 내 소주 가격은 전년 대비 약 1% 하락했다. 이는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흐름으로, 벌써 8개월째다. 같은 기간 맥주 가격도 0.3% 떨어지며 동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와 달리 외식업소에서의 가격 인하폭이 더 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술로 이익 안 남겨도 된다”는 자영업자들

이 같은 현상은 ‘불황형 박리다매’ 전략으로 풀이된다. 외식업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고객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자영업자들이 술값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경기 성남의 한 삼겹살집 사장은 “술값을 안 내리면 손님이 오지 않는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주류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의 한 곱창집 역시 “배달 수수료를 감당하느니, 저렴한 주류 가격으로 홀 손님을 늘리는 것이 낫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저가형 포차 브랜드들이 속속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점도 술값 인하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강남에서도 ‘1병 공짜·무제한 술’ 혜택까지

예전에는 소주 한 병에 1만 원도 웃돌던 강남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순대 전문점, 국밥집, 고깃집 등 다양한 업장에서 메뉴 주문 시 소주 1병 무료 제공, 혹은 단체 고객 대상 무제한 주류 제공 등 ‘파격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 국밥집 사장은 “주류 원가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비어 있는 테이블보다 손님이 있는 것이 낫다”고 털어놨다.

출고가 인상에도 음식점 가격은 ‘동결’

한편,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등 주요 주류업체들은 맥주 출고가를 약 2.7~2.9%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인상분은 음식점 가격에 당분간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주류 가격을 인상하면 오히려 손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불황…외식업계의 생존 전략

음식점업 생산지수와 음식료품 소매판매지수가 동시에 하락한 것은 2006년 통계 집계 이래 처음이다. 자영업자들은 눈앞의 마진보다, 손님의 방문 자체가 절실한 상황이다. 결국 소주·맥주가 외식업의 ‘유인 상품’으로 전락한 지금,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 전국 식당가의 가격표를 다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