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법 조항의 추가를 넘어, 한국 노동시장의 임금체계와 노사관계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실효적 적용을 위해서는 직무급제 도입, 객관적 기준 설정, 사회적 합의라는 산적한 과제가 남아 있다.

■ 비정규직 임금 격차, 더 벌어진 현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약 380만 원, 비정규직은 205만 원 수준으로 격차는 175만 원 이상 벌어졌다. 이는 5년 전보다 오히려 격차가 확대된 수치다.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 ‘이중구조적 차별’의 심화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임금체계는 여전히 연공제 중심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급여가 책정되는 구조에서는 같은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근속기간, 직위, 고용형태에 따라 차등이 불가피하다. 결국 법적 선언만으로는 현장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 직무급제 전환의 필요성과 난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해법은 직무급제다. 직무의 난도·책임·성과를 평가해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이미 독일·영국 등은 이 제도를 통해 동일임금 원칙을 제도화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직무급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직무 평가 기준 마련 ▲임금분포제에 따른 통계 공개 ▲노사 협의 구조 정착이라는 3대 전제가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이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내년 하반기 시행은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 기업별 노조 구조와 사회적 합의의 벽

한국은 산업별 단일 노조보다 기업별 노조 체계가 강하다. 이는 동일 업종 내에서도 임금체계가 기업마다 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같은 제조업 분야라도 A사는 연공급, B사는 성과급, C사는 직무급을 적용한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초기업 교섭이 제기된다. 업종별·산업별 교섭을 통해 임금체계를 표준화해야 제도의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사 모두 합의해야 하는 이 과정은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 노동계·경영계의 상반된 시각

노동계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고용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제도라며 환영 입장이다. 특히 동일한 노동에 차별적 대우를 받는 현실이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자 개개인의 숙련도와 생산성은 다르다”며 획일적 임금체계가 불공정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가 같아질 경우 ‘역차별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국제 비교와 한국적 과제

영국과 독일은 직무급제를 통해 동일임금 원칙을 제도화했지만, 이 역시 수십 년에 걸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보완을 거쳐 가능했다. 한국은 산업별 노조 부재·연공제 임금 관행·노사 불신이라는 3중 구조 속에서 시행을 앞두고 있어, 단기간 내 정착은 쉽지 않아 보인다.

■ 전망과 과제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는 분명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시대적 요구’**다. 그러나 단순히 법률 조항을 신설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직무급제 기반 확립

업종별 교섭 확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보완

이 3가지가 충족될 때 비로소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대우를 받는’ 상식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 결론

정부의 추진 속도와 현장 준비 사이에는 분명 간극이 존재한다. 2025년 하반기 시행 목표는 선언적 의미 이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법제화는 한국 노동정책이 연공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거대한 변화가 노사 모두에게 ‘상생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