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도서관 평일 오후, 열람실의 풍경이 달라졌다. 조용한 책상마다 공인중개사·경비지도사·주택관리사 교재가 펼쳐지고, 한쪽에는 바리스타 실기 노트가 빼곡하다. 50~60대가 자리를 메우며 “다음 일을 위한 공부는 도서관에서”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은퇴를 전후한 베이비붐 세대가 비용 부담 없이 몰입할 수 있는 ‘두 번째 사무실’로 도서관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자격증·투자 공부로 방향 튼 ‘액티브 시니어’

은퇴 뒤에도 일과 자기계발에 적극적인 ‘액티브 시니어’의 도서관 유입은 통계로 확인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전국 1,580곳 회원 구성을 분석한 결과, 50대·60대 이상 비중은 2021년 7.69%, 4.77%에서 올해 10.07%, 7.37%로 꾸준히 상승했다. 같은 기간 고용행정통계에서는 50대와 60대 이상 신규 구직 인원이 각각 7만7,000명, 7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8.9%, 10.5% 늘었다. 젊은 층(29세 이하 8.9%↑, 40대 7.0%↑)보다 증가 폭이 크다.
증가의 무게중심은 ‘현금흐름을 만드는 공부’다. 창업 리스크를 피하려는 이들은 공인중개사·주택관리사처럼 제도권 일자리로 연결 가능한 자격증을 선호하고, 소자본 창업을 노리는 이들은 바리스타·제과제빵 자격에 관심을 보인다. 한편에선 퇴직금 운용을 염두에 둔 배당주·미국 주식 공부도 눈에 띄게 늘었다.


왜 도서관인가

공간 선택에는 세 가지 이유가 겹친다. 첫째, 공공 공간의 무상성—카페 대비 장시간 학습 비용이 들지 않는다. 둘째, 집중 환경—디지털 기기 유혹이 상대적으로 적고, 비슷한 연령대의 학습자들이 주는 동료효과가 있다. 셋째, 콘텐츠 접근성—시험 대비서와 투자 서적, 직업전환 관련 강좌(평생교육 프로그램)까지 한 곳에서 접속 가능하다.

고용시장과의 ‘연결고리’가 관건

전문가들은 흐름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자격증→일자리로 이어지는 사다리의 보강을 주문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은퇴 이후 사회참여 기회와 활동 공간이 부족한 현실에서 도서관이 대체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자격 취득이 실제 채용·현장 실습으로 이어지도록 지자체와 정부가 매칭 프로그램, 인턴형 일경험 제도를 촘촘히 연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장에서 나온 요구

지역 수요 기반 커리큘럼: 재개발·고령주거 확대 지역은 주택관리·안전관리, 관광지 인접 지역은 서비스·관광통역 등 지역성 반영.

실습 동반형 강좌: 바리스타·시니어 케어 등 실무직종은 자격시험 대비와 현장 실습을 패키지화.

금융·디지털 리터러시: 배당·ETF 등 재테크 관심 급증에 맞춰 위험 관리, 세제, 보이스피싱 예방을 포함한 기초 교육 강화.

일자리 매칭: 도서관-평생학습관-LH·공공기관·아파트 단지 관리주체와 연계한 ‘구인 설명회+즉시 면접’ 모델 상시화.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정부·지자체는 이미 평생학습 예산을 확대하고 있지만, 공급자 중심의 ‘강좌 개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주택관리사·경비지도사 등은 시험 일정—실습—채용 공고 타이밍을 맞춘 패스웨이를 미리 설계해야 하고, 소규모 카페·편의점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상권 데이터와 임대료, 인건비 시뮬레이션을 제공해 ‘감(感) 창업’을 줄여야 한다. 투자 공부 열풍에는 연금·세금·리스크 관리 모듈을 의무화해 과도한 레버리지 노출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