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밥상 위 반찬에 불과했던 김이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 전략 식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에서는 ‘검은 반도체’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수년 사이 김 가격은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소비자 체감 물가는 물론, 통계 지표에서도 상승 흐름이 뚜렷하다. 2020년을 기준으로 보면 김 관련 물가 지수는 5년 만에 50% 이상 뛰며, 일상 식재료 중에서도 유독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단기적인 수급 불균형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기후가 흔든 생산, 바다가 달라졌다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생산 환경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김을 포함한 해조류는 수온 변화에 민감한데, 최근 수십 년간 우리 바다의 온도는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상승했다. 특히 동해를 중심으로 수온 상승 폭이 커지면서 양식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
실제 산지에서는 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색이 변하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고수온과 강수 패턴 변화로 바닷물 속 영양염 균형이 깨지면서 품질과 생산량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 구조다. 이로 인해 생산비 부담은 커지고, 공급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 김이 ‘K-푸드’가 된 순간
공급이 흔들리는 사이, 수요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늘었다. K-드라마와 K-팝을 계기로 김밥과 김이 해외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김은 건강식·채식 식품·다이어트 식재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는 간편식·스낵 형태의 조미김이 인기를 끌며 소비층을 넓히고 있다. 단순한 한식 재료를 넘어 글로벌 스낵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 수출 10억 달러 시대, 그러나 과제는 남았다
이 같은 흐름은 수출 실적으로도 확인된다. 김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시장 비중이 커지면서, 김은 이제 농수산 수출의 핵심 품목으로 분류된다
다만 밝은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 변화가 장기화될 경우 생산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고, 원가 상승은 결국 소비자 가격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잘 팔리는 김’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김 산업을 만들기 위한 양식 기술 개선과 해양 환경 대응 전략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반찬에서 전략 자산으로
김은 더 이상 값싼 밥반찬이 아니다. 기후, 콘텐츠, 글로벌 식문화가 맞물리며 김은 한국 수산업의 상징이자 전략 수출 자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가격 상승 이면에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 식품이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졌다는 신호가 담겨 있다.
문제는 이 흐름을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느냐다. 김이 ‘검은 반도체’라는 별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이제는 생산과 환경, 산업 전략이 함께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