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정명령에도 절반 이상 지급 이행 안 돼…“힘없는 하도급만 무너진다”
국내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하도급 업체들이 공사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연쇄 부도 위기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건설사는 정부의 시정명령을 수차례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피해는 대부분 자본 여력이 부족한 중소 하도급업체에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문진석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하도급 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신고는 총 389건, 금액은 254억5897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에는 78건(53억 원), 2023년에는 94건(51억 원)으로 해마다 50억 원 이상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신고 이후에도 절반 가까운 건이 ‘미지급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체 신고 중 지급이 완료된 이행건수는 196건(50.3%)에 불과했고, 회수된 금액은 전체의 38.4%인 97억9504만 원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지반 포장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2023년에만 2억 원 가까운 기계 임대료를 받지 못했다”며 “정부에 신고했지만 지급 명령이 나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렸고, 정작 원청은 자금난을 이유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국토교통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시정명령 미이행 또는 반복 위반으로 인해 실제 영업정지를 받은 건설사도 210건에 이르며, 이들이 미지급한 하도급 금액은 303억 원을 넘었다. 특히 이 중 35개 업체는 2회 이상 영업정지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처벌로서의 실효성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건설사 입장에서 영업정지를 감수하더라도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왜곡된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부 건설사는 이름만 바꿔서 재등록하고, 다시 입찰을 받는 등 실질적 제재를 회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하도급 보호법이 존재하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진석 의원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대형 건설사까지 연쇄 부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하도급 업체들이 대금 지급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결국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국토부가 현장 실태조사를 강화하고, 공공 발주 공사부터라도 하도급 보호 장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토부는 반복 위반 업체에 대한 행정처분 강화를 검토 중이나, 업계에서는 보다 실효적인 ‘대금 선지급 시스템’ 또는 ‘정부 보증기금 개입’ 같은 근본적 제도 보완 없이는 이 문제가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하도급 대금 미지급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과 반복성에 비해, 이 사안은 항상 ‘사후 처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공사는 끝났지만 돈은 안 들어왔다’는 현실은 단순한 민사 분쟁이 아닌, 산업 구조의 취약성과 정부 제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회적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