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벤처 신화'로 불리던 엔씨소프트가 흔들리고 있다.
'리니지'로 시작된 성공은 역설적으로 오늘의 위기를 만들었다.
2024년 영업적자를 기록한 엔씨소프트의 현재는, '확률형 아이템'과 '리니지 의존'의 부작용이 만든 예고된 미래였다.

■ 벤처의 전설에서 위기의 상징으로

1997년 설립된 엔씨소프트는 한국 온라인 게임 산업의 개척자였다.
'리니지'라는 대작을 통해 PC방 열풍을 주도했고, 국내 최초로 동시접속자 10만명을 돌파하며 상장가도를 달렸다.
2003년 코스피 이전 상장까지 이뤄낸 이 회사는 “기민하고 혁신적인 조직”으로 불리며 IT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엔씨소프트는 외려 변화에 뒤처진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이 '리니지'라는 IP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결국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 ‘확률형 아이템’의 유혹, 그리고 역풍

문제의 시발점은 2017년 출시한 '리니지M'에서 시작됐다.
도입된 '확률형 아이템'은 사용자 결제 유도를 넘어선 도박적 구조로 비판받았고, 이 모델은 이후 엔씨의 거의 모든 신작에 이식됐다.

초기에는 매출 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구조에 실망한 이용자들이 등을 돌렸고, 충성 고객층마저 이탈하면서 신작의 흥행 실패가 이어졌다.

■ 반복된 ‘리니지화’ 전략… 독창성은 실종

'리니지2M', '리니지W', '트릭스터M' 등은 모두 기존 IP를 반복적으로 재활용한 게임들이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외적으로 ‘확률형 수익 구조’에 몰두한 나머지, 창의적 콘텐츠 개발 역량을 잃어갔다.

2024년 3월, 리메이크작이었던 ‘트릭스터M’은 결국 서비스 종료 수순을 밟았다.
이 사건은 엔씨가 유저의 피드백을 반영하지 않는 회사로 인식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 구조조정 vs. 혁신, 엇갈리는 판단

2023년, 엔씨소프트는 구조조정 전문가인 박병무 전 VIG파트너스 대표를 공동 CEO로 영입했다.
이후 500명 이상이 희망퇴직을 했고, 일부 비게임 사업은 과감히 분사되었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조직을 줄이는 것과 혁신을 만드는 것은 별개"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현재까지 엔씨소프트는 이렇다 할 혁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출시된 신작 ‘호연’, ‘저니 오브 모나크’ 등도 흥행에 실패하며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 리니지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한때 넥슨, 넷마블과 함께 ‘3N’으로 불리며 한국 게임산업을 대표했던 엔씨소프트는
이제는 **“3N 시대의 종말”**을 논할 만큼 영향력이 약화된 상황이다.

2023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75% 급감했으며,
2024년에는 사상 첫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신용등급 또한 하향 조정되며, 시장의 신뢰에도 타격을 입었다.

■ 미래는 ‘혁신적 콘텐츠’에 달렸다

엔씨소프트의 회생 열쇠는 결국 **"리니지 밖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 이 회사가 보여줬던 3D 그래픽 도전, PC방 모델 개척, 코스닥 돌풍은 모두 혁신의 결과였다.

지금 엔씨가 필요한 것은 '리니지의 반복'이 아니라, 다시금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의 출현이다.
이제 유저는 ‘과금 유도 게임’이 아닌, 이야기와 시스템이 살아 있는 게임을 원한다.
엔씨소프트가 이 요구를 외면하는 한,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