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디지털단지 한 오피스텔 앞. 점심시간을 맞아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나오는 틈에 유독 어두운 표정의 남성이 눈에 띄었다. 1986년생 김모 씨(39)는 지난주 SK플래닛에서 '희망퇴직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의 동료 중 일부는 아직 서른을 갓 넘긴 90년대생이다.
"30대도 이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에요. 후배들도 불안해하고, 이젠 20대도 예외일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SK스퀘어 자회사인 SK플래닛은 최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고환율과 소비 위축, 플랫폼 수익성 저하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업계에선 경기침체와 인력 효율화 압박이 핵심 배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퇴직의 문턱, 30대까지 내려앉다
1986년생 이하 직원까지 희망퇴직 신청 자격이 주어졌고, 실제 신청자 중 일부는 만 30대 중반에 불과했다. '사오정'(45세 정년)이란 표현조차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같은 시기 앱 마켓 운영사 원스토어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 제도를 도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30대 IT직장인은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50대 이상 선배들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지금은 누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을지도 불확실한 시대입니다."
◇ '인생 2막' 꿈꾸며 창업했지만... 절반은 최저임금도 못 받아
명예퇴직 후 많은 이들이 택하는 건 '자영업'이다. 하지만 중장년층이 뛰어든 자영업의 생존률은 매우 낮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50세 이상 자영업자의 약 48.8%는 월수입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이전과 전혀 다른 업종으로 전향해 창업한 경우, 평균 수입은 월 144만 원에 불과하고 이 중 82.8%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83.4%에 달한다.
김모 씨도 최근 커피숍 창업을 고민했지만 발길을 돌렸다. "기초적인 창업 교육이라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빚만 남기고 망했다는 선배들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요."
◇ 청년 창업? 희망보다 생존... 수명은 평균 2.3년
청년층이라 상황이 다를까.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30대 청년 창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통계청 자료는 냉혹하다. 35세 미만이 창업한 기업의 평균 생존 기간은 2.3년에 불과하다. 전 연령 중 가장 짧다.
특히 도소매업, 전문기술 서비스업 등 30대가 선호하는 분야는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연매출은 2억 6000만 원 수준이나 평균 영업이익은 연 2400만 원에 그친다. 부채는 평균 1억 5300만 원. 수익 대부분이 대출 상환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 전문가 "청년·중장년 재취업 맞춤 정책 시급"
전문가들은 이같은 흐름이 대한민국 내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실장은 "중산층 여윳돈 감소는 소비 여력 악화로 이어져 결국 경제 전체의 순환에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취업, 창업지원 정책도 보다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단순한 창업자금 대출이 아니라, 업종 적성 분석, 실전 마케팅 전략, 회계 및 법률지원 등 '패키지형 재도약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이제 퇴직은 중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30 세대조차도 예기치 못한 실직과 불안정한 자영업의 현실 앞에 서 있다. 한국 사회는 이 무거운 흐름을 어디서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정년 대신 '생애 전체의 설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