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옮겨 다니는 시대는 끝났는가?

미국 노동시장에서 최근 몇 년간 일어난 변화는 평생직장의 개념과 일자리 이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있다. 본지는 미국 현지 노동시장 관계자 및 국내 전문가와의 심층 인터뷰, 노동부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현재 변화의 흐름을 직접 조사했다.


팬데믹 이후 미국에서는 이른바 '대규모 사임(Great Resignation)' 현상이 발생해 근로자들이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을 찾아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옮겨 다니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본지가 단독 입수한 미국 노동부 및 주요 리크루팅 기업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23년을 기점으로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본지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사직한 건수는 3,960만 건으로, 이는 전년 대비 11% 감소한 수치다. 특히 2022년 최고치와 비교하면 무려 22%나 감소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현지 인사담당자들은 "구직자들의 태도가 분명히 달라졌다. 과거처럼 이직을 통해 급여 인상을 기대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에 남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변화는 다른 노동시장 지표에서도 감지된다. 본지가 확인한 최신 통계에 따르면, 실업자 1인당 일자리 공석이 2개에서 1개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근로자가 새로운 직책으로 이동하는 비율도 2021년 4.4%에서 2024년 현재 3.5%로 낮아졌다. 이러한 수치는 미국 노동시장 내 분위기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본지 취재진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 대해 현지 노동시장 전문가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 경기 둔화 우려와 기업들의 채용 축소 움직임이 근로자들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 HR컨설팅 회사 대표는 "기업들이 공격적인 채용보다 내부 인력 유지와 비용 통제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근로자들도 이직보다는 현재 직장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경쟁사 인재를 빼오기 위해 과감하게 연봉을 올려가며 영입전에 나섰지만, 최근에는 내부 인재를 길러내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본지가 접촉한 미국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인재 유출보다 내부 교육과 성장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 전문가는 경기 회복 시점에서 다시 인재 확보 경쟁이 심화될 수 있으며,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개인 성장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강해 단순히 안정성만으로는 이들을 붙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국내 노동시장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본지는 국내 구직 플랫폼과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조사 결과, 최근 들어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응답이 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기업과 공기업에 대한 선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등 구조적인 차이가 미국과는 다소 다른 상황임을 보여줬다.

본지가 심층 조사한 결과, 미래 노동시장은 단순한 '이직'과 '안정'의 이분법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기업은 인재 유지와 성장 기회 제공에 집중하고, 근로자 역시 자신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