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에서 이례적인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초고신용자 집단에서 대출 연체가 빠르게 늘고 있는 현상이다. 신용점수가 높을수록 부실 가능성이 낮다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은행권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들어 최상위 신용점수 구간의 연체 증가 속도는 전체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중·저신용자보다 오히려 고신용자 쪽에서 연체액이 더 가파르게 늘어난 셈이다
▲ ‘신용 인플레이션’이 만든 착시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는 신용점수의 상향 평준화, 이른바 ‘신용 인플레이션’이 지목된다.
과거라면 중상위 등급에 머물렀을 차주들이 정책적 조치와 점수 관리 확산으로 상위 구간에 대거 편입되면서, 고신용자 집단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전체 금융 소비자 중 초고신용자 비중은 눈에 띄게 확대됐다. 점수만 보면 ‘우량 차주’지만, 실제 상환 능력과는 괴리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신용 회복 정책의 그림자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대규모 신용 회복 조치도 구조 변화에 영향을 줬다.
연체·파산 이력이 일정 기간 후 삭제되면서 많은 차주가 빠르게 점수를 회복했지만, 소득 구조나 부채 상환 여력까지 동시에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여기에 더해 MZ세대를 중심으로
카드 사용률 관리
단기 점수 상승 전략
대출 직전 점수 끌어올리기
같은 ‘점수 관리 노하우’가 널리 공유되면서, 점수는 높지만 리스크는 숨겨진 차주가 늘어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은행의 고민, 점수는 있는데 기준은 없다
문제는 이로 인해 신용점수의 변별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신용자’라는 이름만으로 대출 리스크를 판단하기 어려워졌고, 결과적으로 대출 문턱을 더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여파는 중·저신용자에게 돌아간다.
과거라면 1금융권에서 대출이 가능했던 점수대의 차주가, 이제는 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 점수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
이번 흐름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 신용점수는 더 이상 절대 지표가 아니다.
금융권 내부에서는
상환 이력의 질
소득의 지속성
부채 구조
▲ 소비 패턴의 안정성
같은 정성·구조적 요소를 함께 반영하는 평가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좋은 점수’의 시대에서 ‘진짜 신용’의 시대로
초고신용자가 늘어났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연체도 함께 늘고 있다면 이는 제도의 경고 신호다.
신용점수라는 숫자보다, 그 점수를 지탱하는 경제적 체력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금융의 기준은 이제
“점수가 몇 점인가”에서
“그 점수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