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기 위해 마련한 채무조정 제도가 취지와 다르게 운용됐다는 지적이 공식 감사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상환 능력이 충분한 일부 채무자에게까지 대규모 감면 혜택이 돌아가면서, 제도의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상환 능력 충분해도 ‘일괄 감면’ 구조

감사 결과에 따르면 채무자의 실제 상환 여력을 세밀하게 반영하지 못한 감면 구조가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됐다. 일정 기준을 넘는 상환 능력을 가진 경우에도 감면률이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사실상 ‘갚을 수 있는 빚’까지 함께 줄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제도 설계 단계에서 소득·자산의 질적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 셈이다.

▲ 고소득 사례까지 포함된 지원

실제 사례를 보면 월 소득이 수천만 원에 달하는 채무자도 상당한 원금 감면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상환 가능 비율이 100%를 훨씬 웃도는 상황에서도 감면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지원 대상 선별이 형식적 기준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재산 숨기기’ 유인 만든 제도 설계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산 규모에 따라 감면 폭이 결정되는 구조를 악용해, 가상자산이나 비상장주식 보유 사실을 신고하지 않거나 신청 직전 재산을 가족에게 이전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 제도 자체가 편법을 유인하는 방향으로 작동했음을 시사한다.


▲ 정책 신뢰 회복이 관건

채무조정 정책은 사회 안전망의 한 축이다. 그러나 기준이 느슨하거나 구조가 단순할 경우, 꼭 필요한 대상에게 돌아갈 재원이 줄어들고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 훼손된다. 이번 감사 결과는 ‘지원의 속도’보다 ‘선별의 정교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 제도 개선 없이는 반복될 문제

감사 당국은 감면 산정 방식 전반에 대한 개선과 함께, 재산 은폐가 의심되는 사례에 대한 추가 검증을 요구했다. 향후 제도 개편에서는 소득의 지속성, 자산의 유동성, 실제 상환 이력 등을 입체적으로 반영하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안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다. 재기를 돕는 제도가 ‘형평성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보다 정밀한 기준과 사후 관리 체계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선의로 시작된 정책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