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나 명태 같은 흰살 생선으로 만든 냉동식품 ‘피쉬 스틱’은 미국과 영국 등 서구권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인기 간식이다. 바삭하게 튀겨낸 한입 크기 생선튀김은 아이들 식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메뉴지만, 그 탄생 과정에는 어업 위기와 국가적 연구 프로젝트라는 예상 밖의 배경이 숨어 있다.
■ 흰살 생선 가격 폭락…해결책으로 나온 ‘가공식품 혁신’
1950년대 초, 북대서양에서 잡히는 흰살 생선은 기록적 공급 과잉에 시달렸다. 대형 선박과 소나(SONAR)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어획량은 급증했지만, 시장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냉동 처리를 거쳐 시장에 공급된 생선들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고, 어업 전체가 구조적 침체에 직면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해산물 가공업체들은 ‘생선을 새로운 형태의 가공식품으로 바꾸는 방식’을 모색했다. 생선 냄새나 가시 등 소비자가 꺼리는 요소를 제거하고, 누구나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피쉬 스틱이다.
■ MIT 식품기술팀 참여…엑스레이·급속 냉동까지 총동원
당시 해산물 가공업체들이 선택한 협력 상대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었다. 업체들은 MIT 식품기술 연구진과 함께 피쉬 스틱의 표준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연구는 단순한 레시피 개발을 넘어 다음과 같은 다양한 기술적 난제를 포함했다.
· 생선 가시 제거를 위한 엑스레이 검사 시스템 개발
· 튀김옷의 수분 비율·조리 시간·온도 등 식감 관련 변수 분석
· 장기 보관을 위한 급속 냉동 조건 설정
· 생선살의 조직감이 무너지지 않는 가공 공정 설계
MIT는 1955년 피쉬 스틱 생산 전 과정을 정리한 약 150페이지 분량의 기술 보고서를 발표했고, 일부 대학원생은 피쉬 스틱을 연구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 국가가 지원한 ‘세기의 식품 프로젝트’
이 가공식품 프로젝트는 민간 기업만의 시도가 아니었다. 미국 의회는 1956년 ‘솔턴스톨-케네디 법’을 제정해 해산물 가공 연구에 정부 예산을 투입했다. 정부는 해산물 소비 촉진을 위한 홍보에도 힘을 쏟았으며, 전국 학교 급식에 피쉬 스틱을 도입하는 규정까지 마련했다.
미 농무부는 피쉬 스틱을 위한 품질 인증 기준을 따로 만들었고, 일부 업체는 MIT와 함께 ‘냉동식품 박람회’를 개최하며 최신 냉동 기술을 적극 홍보했다.
■ 소비자 외면하던 냉동 생선이 ‘국민 간식’으로
출시 초기에만 해도 냉동 생선을 가공해 판매하는 방식은 생소했지만, 피쉬 스틱은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손질 없이 조리할 수 있는 편의성, 가시 없는 먹거리, 바삭한 튀김 식감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불과 몇 달 만에 피쉬 스틱은 미국 해산물 시장의 약 10%를 차지하며 대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바다의 핫도그(Ocean's Hot Dog)’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미국에서는 한 해 소비량이 5,800만 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 과학이 바꾼 식탁…어업 위기의 해법
피쉬 스틱의 역사는 단순한 간편식 개발을 넘어, 산업·정책·학계가 협력해 어업 붕괴를 막은 사례로 평가된다. 기술 혁신을 통해 불황 품목이던 냉동 생선을 인기 상품으로 바꿔낸 것이다.
생선의 형태와 냄새, 손질 번거로움 같은 장벽을 제거하는 식품 가공 기술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냉동식품·어묵·가공생선류 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냉동 해산물 제품들은 바로 이 시절의 연구와 실험이 축적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