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오래 사는 것’이 더 이상 축복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만큼 노후에 필요한 생활비·의료비·주거비가 크게 늘었지만, 사적연금 규모는 주요 선진국 대비 크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사적연금 적립액은 GDP 대비 28%대로, 미국·영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연금보험이 내년 초 국내에 처음 도입된다. 신한라이프를 비롯한 주요 생명보험사들이 준비 중인 ‘한국형 톤틴연금’이다. 오래 살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는 구조로 설계돼, 기존 연금 상품과 다른 방식으로 노후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 17세기 금융 방식이 2025년 한국에 다시 등장한 이유
톤틴 구조는 이탈리아 은행가 로렌초 톤티가 고안한 방식으로, 가입자 모두가 공동기금에 돈을 내고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남은 가입자들의 몫이 커지는 원리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지만 부작용 논란으로 사라졌던 제도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장수 리스크’를 해결할 새로운 금융 도구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은 이미 2016년부터 톤틴형 연금을 판매하며 시장을 확대해왔다.
■ 본격적인 관심 포인트: 손익분기점과 기대수명
톤틴연금은 구조상 ‘손해 보는 사람’과 ‘이득 보는 사람’이 명확한 상품이다.
따라서 가입 전 두 가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 손익분기점(언제부터 내가 낸 돈보다 더 받게 되는가?)
· 본인의 기대수명(나는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는가?)
예를 들어 일본 니혼생명의 대표 톤틴형 상품은, 50세 남성이 20년간 보험료를 납입하고 70세부터 연금을 받는 구조일 때 손익분기점이 90세 안팎이다. 99세까지 생존하면 납입액 대비 약 148%를 되돌려 받지만, 85세에 사망하면 74% 수준에 그친다.
즉,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연금 총액을 좌우한다.
■ 한국형 톤틴연금은 “순수 톤틴”보다 저해지 효과가 더 크다
금융당국이 준비 중인 한국형 모델은 일본보다 한층 ‘한국형 소비자 보호 장치’가 강화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징은 다음과 같다.
▲ ① ‘톤틴 효과’보다 ‘저해지 효과’가 핵심
전체 연금 증가 효과의 36%가 해약환급금 감소(저해지 구조)에서 발생
순수 톤틴 구조에서 발생하는 이득은 약 2% 수준
→ 즉, 일찍 해지하거나 사망하는 가입자의 환급금을 줄여 그만큼 장기 생존자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구성
▲ ② 가입 초기 사망·해지 시 최소한의 환급은 보장
톤틴연금은 원래 사망 또는 해지 시 지급금이 크게 줄어드는 구조지만,
금융당국은 국내 첫 출시 상품인 만큼 “납입한 보험료보다 적게 돌려주지 않는다”는 기준을 검토 중이다.
▲ ③ 불완전판매 방지장치 강화
계약자 확인 절차 강화
보험사 자체 판매자격제도 운영
고객에게 구조적 위험 설명 의무 확대
→ 고령층·초보자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입하는 문제를 예방
■ 장수 시대, 왜 톤틴연금이 주목받는가
한국은 올해부터 전체 인구의 20%가 고령층인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2050년에는 이 비율이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처럼 늘어난 기대수명은 개인에게 다음과 같은 부담을 준다.
·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비 충당이 어려움
· 의료비 지출 증가
· 퇴직 후 소득 공백 기간 확대
따라서 “더 오래 살수록 더 받는다”는 구조는 고령화 시대의 니즈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 국내 소비자에게 주는 메시지
전문가들은 톤틴연금이 노후자산의 ‘주력 연금’이라기보다,
기대수명을 고려해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선택할 만한 상품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유형의 사람에게 유리할 수 있다.
· 장수 가족력이 있는 경우
· 안정적인 장기 연금 수령을 원할 때
· 기존 연금만으로는 노후 생활비가 부족할 때
반면, 단기 해지 가능성이 높거나 중도에 자금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 정리: 한국형 톤틴연금 등장으로 달라지는 노후 전략
톤틴연금은 단순히 “연금 하나가 추가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 증가 → 개인의 노후 위험 증가 → 연금 구조의 변화라는 흐름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금융 솔루션이다.
· 장수자에게 유리한 구조
· 중도 해지 시 불리한 구조
· 저해지 효과 중심의 연금 인상
· 소비자 보호장치 강화
앞으로 연금시장에서 ‘내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가 연금 전략의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