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자원 무기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광산(urban mining)’ 육성에 본격 착수했다. 폐기물로 분류되던 인쇄회로기판(PCB)과 폐촉매 등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해 희토류·리튬 등 핵심광물 확보를 확대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3,500억 원 규모 공급망 전용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 10조 규모 공급망안정화기금 내 3,500억 원 펀드 신설
기획재정부는 31일 열린 ‘제6차 공급망안정화위원회’에서 관련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한도 10조 원 규모로 운용 중인 공급망안정화기금 내에 3,500억 원의 전용 펀드를 별도 조성한다.
이 중 1,000억 원은 해외 자원개발 및 운송 인프라 확충 등 리스크가 높은 분야에 투자되고, 2,500억 원은 핵심광물 및 에너지 부문에 투입된다.
이 펀드는 수출입은행(수은)의 자산 출연으로 조성되며, 기존보다 투자 허들이 완화된다. 과거에는 수은이 채권 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고 손실을 직접 보전해야 했지만, 이번 조치로 수은이 직접 자산을 출자할 수 있어 고위험 프로젝트에도 자금 투입이 가능해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그간 기금이 대출 중심의 안정적 사업에만 집중된다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개편으로 보다 공격적인 해외 자원 확보와 공급망 프로젝트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기업의 참여도 허용돼 중견·중소 협력업체 지원 재원으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 산업부, ‘핵심광물 재자원화 활성화 방안’ 병행 추진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는 ‘핵심광물 재자원화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폐기물로 분류되어왔던 PCB·폐촉매 등에서 추출 가능한 귀금속·희토류 자원을 ‘순환자원’으로 지정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이다.
현재 폐자원으로 취급될 경우 수입·운송·보관 단계에서 복잡한 환경 규제가 적용되지만, 순환자원으로 지정되면 관세·수입 절차가 간소화되고 유통이 자유로워진다.
산업부는 여기에 R&D(연구개발) 과제 발굴, 재활용 공정 기술 고도화 지원, 재자원화 전문기업 육성 등을 포함한 종합 지원 방안을 추진한다.
또 일본, 미국, EU처럼 주요 재자원화 원료에 대해 할당관세 인하를 검토 중이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희토류,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의 국내 재활용 비용이 낮아질 전망이다.
■ 희토류 비축 확대·저감기술 개발 병행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회의에서 “희토류 수급 안정을 위해 해외 자원개발 투자·융자를 적극 확대하고,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 개발과 희토류 영구자석 재자원화, 공공 비축 확대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중국이 희토류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미국과 EU가 핵심광물 공급망 재편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도 **‘자원 내재화 전략’**을 본격화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도시광산’이란?
‘도시광산(urban mining)’은 버려진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폐촉매 등에서 귀금속·희토류 같은 유용자원을 다시 추출하는 산업이다.
스마트폰 1톤을 재활용하면 금 300g, 은 3kg, 팔라듐 100g 이상을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기존 광산보다 효율적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POSCO홀딩스, 고려아연, LS 등이 폐전기제품·전선에서 구리·니켈·리튬을 회수하는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 산업·시장 파급 효과
정부의 이번 조치로 국내 재자원화 시장은 본격적인 ‘2차 자원 확보 시대’ 에 진입할 전망이다.
특히 3,500억 원 펀드가 공급망 안정화기금 내에서 운용되면,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이 참여 가능한 자원개발 프로젝트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 순환자원 지정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에서만 연간 약 30만 톤 규모의 고부가 폐자원이 새롭게 산업 자원으로 재활용될 수 있다.
■ 전문가 진단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펀드는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산업 전략 전환의 신호탄”이라며
“희토류와 같은 전략 광물의 공급망을 내재화하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산업 전반의 안정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산업분석가는 “순환자원 제도 개편은 한국판 ‘리사이클 이코노미’ 구축의 출발점”이라며
“도시광산 산업을 체계적으로 키운다면 일본처럼 ‘자원 수입국에서 자원 재활용 강국’으로의 전환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결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닌, ‘산업안보’ 차원의 전략적 투자다.
폐기물의 재활용을 넘어, 한국이 ‘도시 속 광산’에서 미래의 자원을 캐는 나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