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금 28조 증발…‘불장 코스피’로 돈이 몰린다

국내 자금 흐름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이 한 달 만에 28조 5,000억 원 감소하면서 대규모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 4,000선을 돌파하며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자, ‘기다리던 현금’이 주식으로 쏠리는 양상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9월 대비 28조 5,365억 원 줄었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 인출 가능한 단기성 자금으로, 안전자산 성격이 강하다. 이 돈이 빠르게 빠져나갔다는 것은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폭발적으로 살아났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 “새댁, 돈을 은행에 버리면 어떡해”…주식시장 ‘불장’

10월 한 달 동안 코스피는 약 19% 급등하며 전 세계 주요 증시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특히 10월 중순 코스피가 3,900포인트에 근접한 이후 단 2주 만에 10조 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이제 은행에 돈을 묶어두는 건 손해”라는 인식이 젊은 투자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증시와 무관했던 고객들까지 대거 자금을 옮기고 있다”며
“CMA나 주식계좌로 이동한 자금이 실제 거래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CMA 잔액 100조 육박…투자대기 자금 ‘역대급’

증시 유입과 함께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잔액도 급증했다.
10월 말 기준 CMA 잔액은 95조 3,794억 원으로, 지난달 80조 원대에서 불과 한 달 만에 15조 원 넘게 증가했다.
사실상 “언제든 주식으로 진입할 수 있는 현금”이 100조 원 가까이 쌓여 있는 셈이다.

■ 주식형 펀드 순자산 첫 110조 돌파

자금 유입세는 펀드시장에서도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순자산은 110조 원으로 사상 처음 100조 원을 넘어섰다.
국내외 주식형 펀드를 합친 총 자산은 190조 9,000억 원으로, 6년 만에 부동산펀드(190조 1,000억 원)를 추월했다.

이는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기관과 법인자금까지 ‘증시 강세 지속’을 전제로 리밸런싱에 나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신용거래융자 15조 돌파…‘빚투’도 급증

투자열기는 신용거래에서도 드러난다.
지난달 30일 기준 코스피 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15조 6,051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빠르게 늘며, 개인들이 상승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 은행, 예·적금 금리 인상하며 ‘방어전’

은행권은 급격한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정기예금 금리를 인상하며 방어에 나섰다.
최근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2.55~2.60% 수준으로, 두 달 전보다 0.5%p 상승했다.
그러나 코스피의 연간 상승률(60% 이상)을 고려하면 여전히 ‘예금보다 투자’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 정책금융 확대로 기업대출↑…가계대출은 정체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따라 중소기업대출은 5개월간 25조 원 증가했다.
반면, 정부의 강력한 대출 총량제 영향으로 가계대출 증가폭은 2조 원 수준에 그쳤다.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기업대출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 전문가 진단

전문가들은 이번 자금 이동을 “코스피 4,000 시대의 새로운 자금 흐름”으로 평가한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예금에서 증시로 이동한 자금이 단기 차익을 노리는 ‘속도전 자금’이 아니라,
AI·반도체·2차전지 등 성장 섹터로의 장기 투자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머니무브는 2020년 ‘동학개미운동’보다 구조적”이라며
“초저금리 이후 쌓인 현금이 본격적으로 생산적 자본시장으로 옮겨가는 전환점”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코스피 4,100 돌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국 금융시장은 지금, ‘은행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