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가 일상화된 요즘, 소비자들은 더이상 '브랜드'만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가격과 품질의 균형을 따지는 현명한 소비가 확산되면서, 유통업계의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상품이 생활 전반을 장악하는 추세다.

편의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PB 상품을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소비자 충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과거 “싸지만 품질이 의심된다”던 PB에 대한 편견은 점차 사라지고,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실속형 대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초저가 라면은 개당 48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 반응을 끌어냈다. 올해 이 라면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증가했다. 유통업체가 제조사와 직접 계약해 개발·유통까지 관리하면서, 마케팅비나 중간 유통비를 줄여 소비자 가격을 낮춘 효과다.

대형마트들도 PB 전쟁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의 '노브랜드' 운동화는 3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출시되자마자 입소문을 타며 품절 대란을 빚기도 했다. 또 위스키를 하이볼 전용으로 6천원대에 내놓는 등 프리미엄 주류조차 PB 전략을 도입해 품질과 가격을 모두 잡으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업계 관계자는 “PB 상품이 이제는 단순히 저렴한 대체재가 아니라, 합리적 소비를 위한 '첫 선택지'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한 글로벌 조사기관의 설문에서는 한국 소비자의 10명 중 8명 가까이가 “PB 상품을 일반 브랜드 못지않게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필수품이나 소모품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이 보장되면 소비자는 브랜드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우선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패션이나 이미지 소비가 중요한 제품은 여전히 브랜드 로열티가 강한 편”이라며 PB 전략의 한계도 짚었다.

실제로 1~2인 가구가 늘면서 “대량 구매·할인”보다는 “소량 구매·가성비”가 중심이 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됐다. 여기에 물가 상승이 장기화되면서 PB 상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는 분위기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필수 소비를 똑똑하게 줄이고, 경험 소비나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영역에는 기꺼이 돈을 쓰겠다”는 태도가 뚜렷해졌다. 유통업계도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읽고, 저가 PB부터 프리미엄 PB까지 상품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잡으려는 PB의 진화가 고물가 시대 소비 전선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한 셈이다.